대림절둘째주일(창립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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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살아 움직이는 성전으로
성경구절 예레미야서 7:1-7/ 고린도후서 6:14-18/ 누가복음서 19:45-48
설교자 박종화목사
예배일 2008-12-07
예배 창립
전주 곧 오소서 임마누엘(Plain Song)
찬양1부 축복(H.R.Evans)
지휘자 박수길
반주자 채문경
찬양2부 대관식 찬송(G.F.Handel)
지휘자 최승한
반주자 신채우
후주1부 시온성과 같은 교회(Arr.g.Young)
후주2부 시온성과 같은 교회(Arr.g.Young)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7:1-7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성전 문에 서서, 주님께 예배하려고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다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큰소리로 일러주라고 하셨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이 곳에서 너희와 함께 머물러 살겠다.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아멘.

고린도후서 6:14-18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화합하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함께 차지할 몫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아멘.

누가복음서 19:45-48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예수를 없애버리려고 꾀하고 있었으나, 어찌해야 할지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백성이 모두 그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멘
찬양감사드립니다.
63년 전 오늘 강원용 목사님께서 일곱 분과 같이 모여서 첫 예배를 드렸을 때, 위대한 꿈이 있었을 겁니다. ‘오늘 같은 찬양이 울려 퍼질 것이다. 교회가 가득차고 기쁨에 충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에겐 꿈이 있고 비전이 있다.’ 그래서 야고보 형제단으로 출발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 때의 감격, 새 교회를 만들 때의 감격, 첫 번 모인 사람들만 아실 겁니다. 그 감격은 세월이 흘러서 오늘 우리가 옛날의 감격을 되새기고 앞으로 올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살아있는 성전과 축복의 근원에서 샘물을 마시는 그러한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63년이 지난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꿈이 있죠. 희망이 있지요. 어렵지만 우리는 이 꿈을 이루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가 생겼을 때 그 교회 이름을 뭐라고 사람이 붙이든지 간에 오늘 고린도서에 있는 말씀, ‘모든 교회는 성전이라고 하여라. 성전은 건물만이 아니고 건물에 가득 찬 사람들이라고 하여라.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여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득 찬 성전은 하나님이 살아 있듯이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하여라.’ 그렇게 쓰여있지요. 하지만 성전은 변합니다. 발전합니다. 그리고 생기를 내뿜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와 찬양이 울려 퍼지는 한 항상,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있는 성전으로 계속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보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살아있는 성전이 됩니까, 하는 질문이 저희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에 가면 십대 아이들이 손목에 팔찌를 달고 다니는데, 물론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일 겁니다. 그 팔찌에 쓴 글자가 있는데 알파벳으로 네 글자입니다. WWJD,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그런 말이겠죠.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이 경제 난국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외로운 사람들에게,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무엇을 하실까요? 교회가 성전이라고 했지요? 살아 있는 성전이라고 했지요? 그 분의 아들인 예수께서 오신다면, 몸의 주인인 예수께서 오신다면 무슨 일을 하실까요? WWJD. 그런데 한 동안 유럽에서는 ‘WWJS’가 있었습니다. “What Would Jesus Say?” 예수님이라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런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고, 또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실까요?

최근에 위기가 닥쳐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제일 부자인 미국도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가난이죠. 물질적 빈곤만이 아니라 배고프다 보니 우리의 영도 정신도 가난해지고 빈곤해졌습니다. 사실은 먹을 것이 없는 고통도 슬프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실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인간이, 혼이, 정신이,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여섯 명의 아이 중에 한 명은 너무 가난합니다. 미국 전체 인구가 2억 4천 명쯤 된다고 하지요. 그 중 3600만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삽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미국 전체 인구 중에 4500만 명이 의료 보험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 전체 인구 중에 1400만 명이 무주택이랍니다. 심각한 이야기이지요.

부자인 나라에도 빈부 격차가 심해서 빈곤층이 많다고 합니다. 금융위기, 위기는 가난한 나라만의 위기가 아니라 부자 나라도 위기입니다. 미국은 그렇다치고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하루에 1달러, 1500원 이하를 가지고 하루를 사는 사람이 60억 인구 중에 1/6인 10억 명입니다. 하루에 2 달라 이하, 3천원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전 세계 인구 중에 절반인 30억 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는 안 살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1달러 가지고 하루를 살고, 2달러 가지고 하루를 삽니까?

상대적 빈곤입니다만 오늘 빈곤을 벗읍시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주님이 그러셨는데 오늘 예수께서 오시면 이렇게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하시리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 말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 마음이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속에서는 정신이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는 뭘 바라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라. 먹을 것, 마실 것 먹고, 마음도 가난하면 마음도 채우고,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라. 살아 있는 성전들아, 예수께서 오시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한 자도 복이 있나니, 물질적 가난한 자도 복이 있나니 말씀으로 채워라, 먹을 걸로 채워라. 아마 그러실 겁니다.

오늘 63주년 맞는데 오늘 이 땅에 와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까? 우리 교회는 출발할 때 이 세상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타락했고 부정에 찌들려 있고 그래서 세상을 고치자고 우리 교인들이 모여서 함께 예언자적 종교로 우리 스스로 삶을 자리잡아야 합니다. 부정도 고발했고, 독재도 고발했고, 모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것에서 엄청난 저항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저항적 예언, 저희들의 삶의 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불의가 있으면 그렇게 저항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 다른 예언자적인 사명을 오늘 우리한테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최선의 저항은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쁘다고만 자르지 말고 심판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새롭게 태어나는지 대언을 제시하는 예언을 하여라. 비판적인 예언과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이 오늘 같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성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들어갔더니 본래 하나님의 성전이 기도하는 집인데, 기도하는 집이 장사꾼들의 장사치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성전을 헐라.” 강도들을 내쫓았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강도들아, 나가라! 도대체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을 누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느냐!” 회초리를 들고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세상이, 교회가, 가정이, 모든 것이 부패하고 타락하면 당연히 우리는 회초리를 들고 심판을 해야 합니다. 심판의 회초리는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우리한테 또 다른 예언의 말씀을 하라고 전하십니다. 회초리만 들게 아니라 회초리를 들고 성전을 청소한 후에 어떻게 성전을 만들지 대안을 만들어 내라.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으니 성전을 헐라. 내가 다시 성전을 3일 만에 세우겠다.”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의 비판 속에는 항상 대안 제시가 있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악이 멸하면 선이 승리해야 한다. 심판을 받고 나면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한테 63주년 맞이하면서 “이제 저항의 힘을 모아 앞으로 올 세계를 향해서 보다 하나님 나라에 가깝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생산적 대안을 찾는데 지혜를 짜라.” 고 하십니다. 찬양으로 짤 수 있고, 기도로 짤 수 있고, 우리의 선한 행위로 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제시, 생산적인 지혜 모으기,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이 세계가 요구하는 또 다른 예언의 목소립니다. 이 목소리에 우리도 동참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와서 세계적으로 기독교계가 과거의 진보와 보수로 대결 구도로 있다가 어느 한 점에서 공통 분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진보를 자처했던 기독교에서는 ‘세계는 변해야 한다. 체재도 바꿔져야 한다. 구조도 변해야 한다.’ 그래서 구조, 체재, 모든 집단이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추구하다 보니 뭔가 부족했습니다. 제도만 없애고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새 나라가 안 되는데, 사람은 안 변하고 제도만 바꾸려고 했습니다. 집단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고, 집단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적 결단은 도외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외친 구조의 변혁이 때로는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제도 개혁을 추구하는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인간이, 개인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실한 사람으로 다시 서야 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실존적으로 충실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게을리 했습니다. 다시 한번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충실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개인적(personal)이라는 말은 나 홀로 개인이 아니고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개인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살면 됐는데 지금은 제가 우주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다 세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책임적인 존재입니다. 집단화가 아니라 이제는 개개인이 전부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인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의 고백과 하나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개인적인 신앙이란 인격적이라는 뜻입니다. 인격을 주고 받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 우리가 집단 속에, 체재 속에, 제도 속에, 개인의 인격적 관계를 우리가 도외시했습니다. 이것이 진보 기독교의 고백입니다.

보수 기독교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축복과 믿음을 교환했지만 우리는 제도에는 무관심한 채 개인적인 축복을 제 사사로운 이익에 갖다가 감옥 속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축복을 제가 받으면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사유화(private)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나누는 축복이 아니고 저 혼자 쌓아놓는 이기주의적인 축복, 기복적 축복을 제가 받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줄은 알고 개인적 신앙을 사유화된 신앙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이렇게 보수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허물을 고백하고 나왔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교회가 굉장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큰 틀 구조를 말하다가 인간성이 마비된 죄, 하나님 앞에 충실한 인간 신앙을 말하다가 전부 이기주의에 빠진 사유화의 죄, 이 죄가 오늘 한국 교회의 죄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소통하는 인격을 주고 받는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들은 모여서 전체 틀도 함께 바꾸는 새로운 대안 제시의 예언자적 비전을 마련합시다.

지금 시대가 바야흐로 그런 시대로 돌아섰습니다. 저는 경동교회에 부름 받은 이유는 이런 시대에 저항적 정신을 가지고 미래 대안을 제시하는 또 다른 선두 주자로 경동교회로 불렀으니 이 일에 앞장서서 나가십시오.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의 희망을 말할 때, 가장 큰 비전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비전을 말합니까? 비전을 어떻게 하면 먹고 산다고, 어떻게 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비전이 아니고 베드로가 말하는 비전이면 됩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나한테는 금도 은도 없다. 내가 가진 건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 말씀으로 권하노니 일어나라.” 그랬더니 앉은뱅이가 일어났던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먹을 물이나 먹을 쌀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여전히 말씀입니다. 말씀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체재 속에, 제도 속에 우리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장 깊은 샘물로 가장 근본으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오늘 세상에 모자란 게 뭡니까? 눈으로 보이는 문명이 모자랍니까? 이기적인 사회 현상을 보면서 뭐가 모자랍니까? 도덕적 불감증이 모자라잖아요. 진실된 만족함이 모자라잖아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기본적인 것이 모자라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근본을 채우자는 이야기지, 외형적인 것을 채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실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함께 진실로 복된 것,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어떤 말씀입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정녕 필요로 하는 것,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아 움직여서 우리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요구하고 같이 나누고, 세상이 악하면 서로 항의하고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고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할 근본 동인이 필요합니다. 근본 동기가 필요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하나님의 도덕, 하나님의 윤리가 이 땅에서 지금 사라져 가고 있기에 이것을 우리보고 크게 외치라고 세상과 함께 행복하라고, 하나님도 기쁘시자고, 그렇게 오늘 우리한테 말하고 계십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만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하는 곳을 주님의 성전이라고 하여라. 주님의 성전을 오가는 사람들은 생활과 행실을 참되고 바르게 하여야 한다. 함께 하는 이웃과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짓밟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우상을 섬겨서 재앙을 받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 신앙은 언어나 교리가 아니라 신앙은 행동이고 생활입니다. 이 사실을 함께 누릴 결단을 하십시오. 고린도서는 이런 성전을 가리켜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살아 움직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사고방식도 바꾸고 우리의 담론도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담론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바꿉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건으로가 아니라 영으로 우리한테 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실 물로가 아니라 우리한테 주시는 영성이라는 영으로 우리한테 오셔서 그 영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을 움직이고 체재를 움직이고 모든 것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영, 다시 한 번 겸손하게 영을 받아봅시다. 이 영을 받으면 우리한테 삶이 풍족하게 이뤄집니다. 이 일에 경동 성전이 살아있는 성전으로 다시 한 번 나가십시다. 이것이 우리를 세운 하나님의 뜻이고, 오늘 성전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찬송드리고 축복을 간구합니다. 받은 축복을 나눕시다. 약속받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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