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다섯째 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조회수   2773
설교제목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내셔서
성경구절 아모스서 7:10-17 / 골로새서 1:6-12 / 누가복음서 10:29-37
설교자 임영섭 목사
예배일 2022-07-10
전주 사랑의 주여, 저희가 여기 있나이다(J.S. Bach)
찬양1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O. Speaks)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주 앞에서 항상 기뻐하라(G. Rathbone)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믿음 더욱 주소서(W. J. Kirkpatrick)
후주2부 믿음 더욱 주소서(W. J. Kirkpatrick)
성경본문 아모스서 7:10-17
베델의 아마샤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렸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도 말하였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 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이제 그대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오. 그대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소. 그대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골로새서 1:6-12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누가복음서 10:29-37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다음에, 자기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내셔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인 아모스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에서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는 책입니다. 그것은 아모스서부터 예언자의 이름이 책 이름이 되는 전통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모스 예언자를 그의 이름이 아모스서, 라는 책 이름이 되었다고 해서, 최초의 문서예언자 이렇게 부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위대한 예언자들도,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모스서 앞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여러 예언서들이 예언자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역사적인 연대를 보면 아모스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모스 이전에는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고 해서, 예언자의 이름으로 책을 편찬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아홉 장밖에 되지 않는 작은 책이지만, 아모스서가 이렇게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만큼 아모스의 예언이 당대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아모스가 어떤 말씀을 선포했길래, 이토록 이스라엘 사회와 역사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아모스서에는 여러 구절들이 있지만, 저에게 단 한 절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32절을 선택합니다.

32절을 제가 읽어보면, “나는 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오직 저희만을 선택하였으나,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어떻게 보면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나 그들이 죄를 지어 심판하시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옛날 우리가 읽던 개역성경의 번역으로 보면,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읽어보면, “내가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내가 너희만 알았나니.” 마치 그토록 사랑하던 누군가가 배신을 했을 때, 내가 지금까지 당신만을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소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내가 너희만 알았나니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그러한 배신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시고 철저히 보응하고 심판하시겠다고 다짐하십니다.

아모스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과 이스라엘의 배신, 그리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의 경고이며, 이런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선포했던 최초의 예언자가 바로 아모스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고 망할지 모른다고 하면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아모스서 7장을 보면, 아모스와 당대의 지도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넘치는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아모스는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였고, 당시 지도자들은 시끄러우니까 그런 예언은 딴 데 가서 하고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협박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된 상태였고 북쪽은 북이스라엘, 남쪽은 남유다로 불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모스 예언자는 북이스라엘이 아닌 남 유다에 살면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삼으셨고, 남쪽에 살던 그에게 북이스라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부였던 베델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그 장면이 바로 오늘 아모스서 7장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에 살던 어떤 사람이 어느날 예언자가 되어, 북한 평양에 가서 그곳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이제 곧 심판을 받고 망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과 비슷한, 매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서릿발 같은 아모스의 예언을 들은, 당시 베델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마샤 제사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견자야 너는 네 고향 유다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해라. 다시는 베델에서 예언하지 말아라.” 이렇게 호통을 칩니다.

여기서 아마샤 제사장이 아모스를 향하여 선견자야, 이렇게 부르고 있는데, 선견자, 라는 말은 당시 예언자를 가리키던 또 하나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9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옛적에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할 때에는, 선견자에게 가자고 말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을 옛적에는 '선견자'라고 불렀다. 이 말씀처럼 선견자는 예언자의 이전 호칭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모스와 아마샤 사이에 진행되는 대화를 자세히 보면, 조금 이상한 대목이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샤 제사장이 선견자야 이렇게 부르면서, 예언자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질책합니다. 물론 아모스가 하는 예언이 북이스라엘이 망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듣기 싫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정작 그 말을 들은 아모스의 대답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모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이렇게 대답합니다.

결국 이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마샤는 예언자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게다가 너는 유다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밥벌이를 하라고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합니다.

더군다나 아모스는 이러한 아마샤의 협박에 대해서, 지금 예언을 하고 있으면서,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예언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예언하라고 하셔서 하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오늘 말씀은 무엇인가 대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논리에 맞지 않고, 서로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예언자라고 해서, 모두 같은 예언자가 아니라, 예언자들의 종류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자를 부를 때, 히브리어로 나비,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비 말고 예언자를 부르는 호칭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로 호제이고, 이 호제가 바로 우리말로 선견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호제, 라는 예언자는 어떤 성격의 예언자였는가? 사무엘상 241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다윗의 선견자로 있는 예언자 갓이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 여기서 다윗의 선견자 갓이 바로 호제입니다.

역대상 255절에도 보면, “이들은 모두 왕의 선견자 헤만의 아들이다.” 이런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헤만을 선견자라고 부를 때, 이것이 바로 호제입니다.

그리고 역대하 3515절에도, 왕의 선견자 여두둔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서도 선견자가 바로 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러한 모든 호제들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냥 선견자가 아니라, 그냥 호제가 아니라, 왕의 선견자, 왕의 호제, 이렇게 부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호제는 예언자였지만, 특별한 지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 옆에서 왕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왕을 위해서 예언을 하는, 왕실 예언자가 바로 호제였습니다.

이 호제들은 일종의 나라의 관리였고, 왕이 전쟁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에게 월급을 받다보니, 때로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때도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씀을 전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이 선견자야 하고 호통을 칠 때,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너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결국 너는 왕 옆에 붙어서 돈이나 받으면서, 밥벌이를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예언하는 예언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 나라로 가서 너희 왕을 위해서나 예언하면서 왕의 비위를 맞추어라, 이런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아모스를 향해, 이 월급쟁이 예언자야, 너는 왕의 하수인이 아니냐, 이렇게 비웃고 모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단호히 대답합니다. 나는 직업적인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원래 먹고살기 위한 나의 직업이 있다. 나는 짐승을 먹이고 무화과를 가꾸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이곳으로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을 선포할 뿐이다.

너는 나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손해를 보든지 말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이 말씀을 무조건 전하겠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망하고 모두 포로가 되어 끌려갈 거이라고 심판을 선포합니다.

당시 예언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의식주를 위해서 예물을 받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예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 2315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예언자들을 두고,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쓴 쑥을 먹이며, 독을 탄 물을 마시게 하겠다. 죄악이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솟아 나와서, 온 나라에 퍼졌기 때문이다.”

미가서 3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 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

 

그래서 오늘 아모스는 오늘 15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이렇게 베델까지 올라와말씀을 선포하게 한 것은, 돈이나 명예나 어떤 이익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내셔서, 예언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붙잡아 내셔서,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라카흐, 라고 하는데, 그 뜻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나를 잡아채셨다. 나를 붙잡아 데려가셨다, 이런 뜻도 있지만, 팔리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세상의 예언자들은 돈에 팔려 하나님을 말씀을 선포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팔고 다니지만, 반대로 나는 하나님께 팔린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낚아채어 가신 사람이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할 뿐이다, 오늘 아모스서는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자신을 의롭게 보이게 하려고 예수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율법교사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속에서 강도 당한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사람이었습니다.

율법교사와 제사장과 레위인, 이들은 사랑과 자비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사랑, 자신들에게 명예가 되지 않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도와주어도 이익이 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돈을 지불해야 했던, 양 떼를 치다가 생업을 버리고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 같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오늘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오늘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을 오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건강해지기 위해서 믿고, 사업이 번창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믿고, 교회에 가면 무엇인가 내가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이익을 얻고 인정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모스는, 그리고 오늘 예수의 비유는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밥벌이를 위해서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내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목사도 아니고 직업으로 예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하실 때, 여러분이 바로 아모스 같은 예언자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때문에, 대가 없이 우리에게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때문에,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예언자로, 일꾼으로,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 가운데에도 충만할 때, 세상이 여러분을 조롱한다 하여도, “나는 밥벌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내셔서, 나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사랑을 전한다고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외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예배일 절기 설교제목 설교자
1292 2025-05-04 부활절 셋째 주일    한 아이와 하나님 나라 김진 목사
1291 2025-04-27 부활절 둘째 주일    복음의 대가 임영섭 목사
1290 2025-04-20 부활주일    문을 열고 벽을 허물고 임영섭 목사
1289 2025-04-13 종려주일    장애를 가진 하나님 임영섭 목사
1288 2025-04-06 사순절 다섯째 주일    이웃을 위한 향유 임영섭 목사
1287 2025-03-30 사순절 넷째 주일    모두를 위한 하나님 나라 임영섭 목사
1286 2025-03-23 사순절 셋째 주일    새 이스라엘의 사명 임영섭 목사
1285 2025-03-16 사순절 둘째 주일    전력을 다한 달음질 임영섭 목사
1284 2025-03-09 사순절 첫째 주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임영섭 목사
1283 2025-03-02 주현절 여덟째 주일    산 아래로 내려가라 임영섭 목사
1282 2025-02-23 주현절 일곱째 주일    하나님이 나를 앞서서 보내셨다 임영섭 목사
1281 2025-02-16 주현절 여섯째 주일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임영섭 목사
1280 2025-02-09 주현절 다섯째 주일    내가 만난 주님 임영섭 목사
1279 2025-02-02 주현절 넷째 주일    사랑의 씨앗 임영섭 목사
1278 2025-01-26 주현절 셋째 주일    거룩한 청취 임영섭 목사
1 2 3 4 5 6 7 8 9 10 ... 87
전체 메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