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첫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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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해가 어두워지는 날이 오리니
성경구절 이사야서 64:5-9/ 고린도전서 1:3-9/ 마가복음서 13:24-31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20-11-29
전주 오소서 온 인류의 구세주여(D. Buxtehude)
찬양1부 어서 돌아오오(박재훈 곡) 특송: 김홍태 집사
지휘자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곧 오소서 임마누엘(J. Rutter 편곡) 특송: 이예랑 교우, 김유정 집사, 김호 집사, 김준홍 교우
지휘자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영원한 문아 들릴지어다(G. M. Martin)
후주2부 영원한 문아 들릴지어다(G. M. Martin)
성경본문 이사야서 64:5-9
주님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고린도전서 1:3-9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서 13:24-31
"그러나 그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13,1)

예루살렘 성전의 엄청난 규모와 그 웅대함에 놀라 감탄한 것이지요. 비록 바벨론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그 후 재건되었다가, 다시 파괴되는 등, 역사의 부침을 겪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여전히 다윗 왕의 영광과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옹벽에 남아있는 돌들 가운데는 무게가 50톤 이상 나가는 것도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길이가 15미터에 이르며 무게는 대략 300톤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13,2).

 

우리는 주후 66년부터 73년 사이에 전개된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예루살렘 성전에서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한 로마 병사가 불붙은 나무토막 하나를 집어 들고, 다른 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 황금 창문 안으로 던졌습니다. 치솟은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유대인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불길을 잡으려고 했으나 속수무책(束手無策),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로마 정복군의 지휘관이자 후에 9대 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베스파시아누스(AD9-AD79)는 성전과 도성과 성벽의 대부분을 무너뜨리라고 명령했고, 이로써 예수님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성전 파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는 따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13,4).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격변의 전환기는 징조 없이 일어나는 법이 없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짓 구세주들이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난무하고,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뿐만 아니라’(13,6-8),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13,12-13)을 그 징조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서 저자는 로마 제국의 제4대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Claudius, BC10-AD54) 치하의 기근(재위 41년부터 54/11,28), 주후 61년에 있었던 소아시아의 지진과 63년에 일어났던 폼페이의 지진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의 해체와 식구들의 적대적 투쟁은 묵시문학에서 마지막 때의 타락 현상을 나타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정은 신앙의 보루로 생각되었고, 그래서 가정이 무너지면 신앙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고대 사회에서만 있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시대도 가정이 무너지면, 신앙도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지지요.

 

도덕과 인륜이 무너지고, 자연재난이 시작되고, 전쟁이 일어나면, 거짓 예언자들과 구세주들이 득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환기의 시대적 표징을 새로운 세상을 위한 해산의 진통의 시작으로 보고(8,22),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환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환난이라고 합니다(1,19). 누구도 피할 수 없고, 그 환난의 날들을 줄일 수 없지만, 주님은 자신이 뽑아 선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그 환난의 날들을 줄여 주시니,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어 구원을 받으라고 예수님은 권면하십니다(13,13). 그러면, 그 환난이 지난 후,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올 때에,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는 것이지요(13,24-27). 그러므로 제자들은 시대의 징조를 읽고,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13,33).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시련과 고난 속에서 자신을,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단지 수동적으로 고난을 인내함으로써 제자 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입증해야 할 과제를 짊어지게 된 것이지요(13,10).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13,31), 의지하여 환난의 때를 믿음과 인내로 이기면서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고난과 환난, 지구적 재난과 우주적 파국의 한 복판에서 고난을 인내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모든 사람들이 고통 받는 암울한 시대에 복음이 무엇이기에 그것을 전파해야 한단 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우주적 파국, 곧 하늘이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리는 우주적 파국에 대한 표상을 예언자 이사야에게서 빌려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서 저자의 관심은 역사의 종말과 우주의 파국과 그 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는 종말에 있을 환난과 고난을 종말론적 시간표의 마지막에 둠으로써 그것들을 상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그런 종말의 표징들과 환난들은 궁극적인 실제가 아니라, 곧 사라져 버릴 잠정적인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마가는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종말현상들이 아니라, 종말과 함께 시작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궁극적 관심을 기울인 것입니다(65,17-18).

 

그래서 재난의 때, 파국과 환난의 때가 기쁨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과 우주적 재난으로만 끝난다면, 거기에는 어떤 소망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은 주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어졌고(13,31), 종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니,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종말은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재난과 환난을 위협과 협박의 수단으로 삼는 사이비 종말론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는 새 창조의 기회인 것입니다.

 

재난으로 번역되는 영어 ‘disaster’의 어원은 떨어지다라는 뜻의 ‘dis’이라는 뜻의 ‘astro’가 합쳐진 것입니다.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지구와 충돌하면, 아마 지구는 공중 분해될지 모릅니다. 그 어떤 재난보다 두려운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함의(含意)는 별이 없으면, 하늘 길도, 땅 위의 방향도 잃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마땅한 가치, 우리가 인류와의 공생과 자연과의 상생을 위해 실현해야 할 마땅한 삶을 위한 나침반이 없는 것이 진정한 재난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예언자 제2이사야 시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셨지만, 이스라엘은 주님께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하고 계셨지만, 아무도 주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백성을 맞이하려고 하나님은 종일 팔을 벌리고 계셨지만, 이스라엘은 우상에게 달려가 이방 제사상에 올랐던 고기 국물을 마셨습니다(65,1-4).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주님을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64,7).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망하는 재난보다 더 큰 재난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하늘을 펴시고, 땅을 세우신 주님을 잊었다는 것이지요(51,13).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66,2)고 말씀하신 주님께 돌아가,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는데 있습니다(66,5).

 

코비드-19’의 제3차 대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코비드-19’의 유행은 진퇴를 거듭하겠지만, 서서히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면, 경제적 타격은 더 커질 것이고, 한국교회의 몰락도 가속화할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주요 6개 교단(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감, 예장 고신, 성결, 기장)의 교인수가 2011년부터(당시 8806,053), 2019년까지, 지난 8년 동안에 140만 명이 줄었고, 2019년 현재 7412,150명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합동이 299만에서 256만 명으로 438,000명 정도가 줄었고, 통합은 285만에서 250만 명으로 345,000명이, 기감은 158만에서 128만으로 298,000명이, 성결교(기성)59만에서 43만 명으로 159,000명이, 기장은 30만에서 22만으로 약 8만 명 정도가 줄었습니다.

작년(2019) 한 해 동안의 감소 추이를 살펴보면, 합동은 전년(2018) 대비 10만 명이 줄었고(3.8% 감소세), 통합은 47,000(1.85%), 기감은 2,624명이 감소했고(0.2%), 기성은 2,939(0.68%), 고신은 19,000(2.59%), 기장은 12,000(5.55%) 감소했습니다. 감소 비율로 따지면 기장이 가장 많이 줄어들었고, 그 다음이 예장 합동입니다.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인 이 6개 교단에서 1년간 감소한 교인의 숫자는 거의 18만 명에 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100명이 모이는 교회 1,770개가 사라져버린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수적 감소와 한국교회의 추락은 사실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고,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라는 인구변동, 대형교회 목사들의 도덕성 문제, 세습, 재정불투명성,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 권력 친화적 정치성 등으로 야기된 공신력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됩니다. 이단 단체들의 부각과 코비드-19’의 대유행이 몰락 속도를 더 가속화시키고 있을 뿐이지요. 대형교회는 서서히 몰락할지 몰라도, 중소규모 교회들과 농어촌 교회들의 몰락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코비드-19의 세계적 대유행기후위기는 한국교회에게만이 아니라 인류에게 재난의 징조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재난의 날에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고(13,27), 그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터이니, 그들은 깨어 있어야합니다(13,33). 주님께서 사방에서 모으신 선택된 사람들에게 역사와 우주의 종말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종말과 함께 시작되는 새로운 창조는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유럽의 언어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후투룸’(Futurum)이고, 다른 하나는 아드벤투스’(Adventus)인데, ‘후투룸되는 것을 가리키고, ‘아드벤투스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대림절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단어는 아드벤투스이지요.

그런데 과거와 현재로부터 발전하는 후투룸으로서의 미래는 결코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희망에 대한 아무런 동기도 주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아드벤투스는 독일어로 추쿤후트’(Zukunft)로 번역되는데, 그리스어로는 파루시아에 해당합니다. 세속 그리스어로 파루시아는 사람의 도착이나 사건의 발생, 축자적으로는 현재를 뜻하지요. 그러므로 아드벤투스로서의 미래는 되어가는 현재’(Futurum)가 아니라, ‘와있는 미래’(Adventus)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종말론이 고통스럽고 우울한 전망이 아니라, 기쁜 소식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기의 징조를 기회의 표징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43,18-19).

 

희망의 하나님은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35,4; 40,5). 하나님이 그의 영광과 함께 오실 때, 그는 온 우주를 그의 영광으로 가득 채울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를 볼 것이며, 그는 죽음을 영원히 삼켜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하여, 현재를 향하여 오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회개, 전향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향하여 오심(아드벤투스)과 인간의 회개의 통일성이 성취된 시간’, 카이로스이고, ‘은혜로 충만한 시간입니다. 현재가 된 하나님의 미래가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원천이고, 그 미래 속에 우리가 튼튼히 서 있을 때, 우리는 재난의 때를 기쁨의 때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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