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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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이사야 6:1-8 / 고린도전서 15:1-11 / 누가복음서 5:1-11 |
설교자 | 임영섭 목사 |
예배일 | 2022-02-06 |
전주 | 주여,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J. A. Guilain) |
찬양1부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G.B.Shea) : 임건묵 교우 |
지휘자 | |
반주자 | 채문경 권사 |
찬양2부 | 나를 이끄소서(S. S. Wesley) |
지휘자 | 김선아 집사 |
반주자 | 신채우 집사 |
후주1부 | 주 하나님, 그 거룩하신 이름 늘 높이네(Leoni) |
후주2부 | 주 하나님, 그 거룩하신 이름 늘 높이네(Leoni) |
성경본문 |
이사야 6:1-8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찼다.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고린도전서 15:1-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나도 전해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누가복음서 5:1-11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밀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보고,예수의 무릎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성경에는 수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나오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는, 성경에서 그 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영향을 후대에 끼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의 인물들 중에는 오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5백 명의 자매형제들처럼,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고, 사람들에게 부활사건을 전한 익명의 위대한 일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예언자는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신앙의 인물들과는 구별되는 장점과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가 선포한 말씀이 담긴 이사야서는 성경에서 시편과 예레미야서와 함께 가장 부피가 큰 책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내용이 무려 66장이나 됩니다.
말씀의 양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잘아는 요나 예언자는,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한 문장, 단어 숫자로 보면 단 세 개의 단어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요나서 3장 4절에 나오는 “사십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놀랍게도 성경에 기록된 요나가 선포한 말씀이 딱 이것뿐입니다.
물론 이 한 문장의 말씀 선포로 엄청나게 많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요나는 사실 예언자, 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최소한의 사역을 하면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자세로 일관한 예언자였습니다.
둘째로, 이사야는 단순히 말씀만 많이 선포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매우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예언자로서 사역했던 시기에 통치한 이스라엘의 왕만 해도 웃시야 왕부터 시작해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그리고 므낫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다섯 명의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40년 넘게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셋째로, 그는 자신만 예언자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8장 3절을 보면, 이사야의 아내도 예언자였고, 따라서 부부가 함께 활동했던 예언자 가정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넷째로, 이사야는 예언자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사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사야 학파, 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사야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이름과 영향 아래에 있던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내용들이 우리가 읽고 있는 이사야서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이사야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영향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마태복음서를 비롯하여 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과 연결시키는데, 그중에 상당 부분이 바로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예수의 말씀과 세례요한, 그리고 사도들의 입을 통해서 이사야서 본문이 언급되는데, 무려 이사야서가 인용되는 횟수가 411번에 이를 정도로, 그의 영향이 700년이 지난 예수의 시대와 초대교회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사야의 위대한 삶과 신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사야의 시작과 끝, 바로 그의 소명과 그의 마지막 죽음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목표를 향해 예언자로서 살아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는 성전에서 놀라운 환상을 봅니다.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고,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날아다니며 큰소리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때 땅이 흔들리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한 가운데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때 날개 달린 스랍 하나가 불타오르는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며 그가 정결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고민이 담긴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이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때 이사야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청하며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는 걸 봤지만, 이사야처럼 제가 여기 있으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 하고 먼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머뭇거렸고, 지난 주일에 봤던 예레미야도 항상 하나님께 왜 자신을 예언자로 세우셨냐고 하소연하고 눈물로 호소했던 걸 우리는 압니다. 대부분의 신앙의 인물들은 하나님이 먼저 찾아가 그들을 부르셨지 하나님의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스스로 나선 경우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적극적인 소명과 함께, 그는 순교자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에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자원하여 예언자가 되어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므낫세 왕 시절에 톱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사야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소명의식,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행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이 그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예언자로 만든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복음서에서도 역시 예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이사야서와 매우 유사한 소명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어부들에게, 예수께서 다가가 그물을 내릴 곳을 알려주자, 수많은 고기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이사야처럼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이사야처럼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단순히 놀라운 기적이나 신기한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그런 체험을 하고 단순히 놀라거나 신기해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하나님을 보고 듣고 만났을 때,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죄인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는 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에 의해서,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체험을 합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 어부들에게 보여주신 기적은 물고기를 잡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고기 잡는 법으로 따지만 사실 베드로가 예수보다 더 많은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만나서 자신이 지금까지 일하던 그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이 찢어질 듯한 물고기를 보면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물고기를 잡아서 그것을 죽여서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서 기자는 사람을 낚는다고 할 때, 물고기를 낚는다는 단어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헬라어로 “아그라”라고 해서, 물고기를 잡아서 그것을 죽이고 그 생명을 취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그라, 라는 단어에다가 살아있는 생명을 가리키는 “조오스”라는 단어를 붙여서 완전히 다른 의미의 “조그론”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이 “조그론”은 죽이기 위해서 잡는 게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잡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어부들이 물고기를 낚다가 제자가 되어 사람을 낚게 되는, 낚는 대상이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 대상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어부에서 제자가 되어 물고기 대신 사람을 얻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행위, 그것을 낚는 행위 자체도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으로 달라집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지금까지 베드로는 어부로 살면서 무엇인가를 잡아 그것을 죽여서 자신의 생명을 위해 먹고 사는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를 만나 내 수고와 내 희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바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오늘 누가복음서에 담긴 중요한 의미입니다.
바로 그러한 새로운 삶과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하였고, 그는 수많은 물고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마지막 11절 말씀처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 예수를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주현절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예수의 얼굴만을 보고 예수의 말씀만을 듣고 예수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와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가치,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예수와의 만남은 물고기를 잡는 나의 삶에, 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는 그런 물질적인 축복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와의 만남은 물고기 몇 마리를 잡기 위해 힘을 쓰다가, 그물이 찢어질 듯한 물고기를 거둠으로써, 물고기에 집착하던 나의 삶을 포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를 만나는 것, 하나님 앞에 나를 작은 미물보다 못한 존재로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살았던 삶의 목적과 방향을, 내가 아닌 이웃과 세상을 향해 전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현절에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이유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어떤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절과 3절에 나오는 “무리들”입니다.
복음서에는 제자들도 나오지만 어디에서나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무리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었고 예수의 기적을 목격했고 예수가 가는 곳마다 몰려들어 예수 옆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앞에 무릎 꿇지 않았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았고, 예수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물을 찢어놓을 듯한 물고기들에만 관심을 두면서 그저 신기해하고 놀랄 뿐이었습니다.
주현절 다섯째 주일을 보내면서, 주님 옆에 서성이는 무리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통해, 오늘 함께 나누는 주의 만찬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주님을 따르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이 죽음을 향해 치닫는 세상을 향해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구를 제자 삼을까, 고민하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시옵소서. 주님께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번호 | 예배일 | 절기 | 설교제목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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