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첫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조회수   735
설교제목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성경구절 예레미야서 33:14-16/ 데살로니가전서 3:9-13/ 누가복음서 21:25-36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21-11-28
전주 오소서 온 인류의 구세주여(D. Buxtehude)
찬양1부 아름다운 주의 장막(S. Liddle) 특송: Countertenor 장정권
지휘자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아름다운 주의 장막(S. Liddle) 특송: Countertenor 장정권
지휘자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영원한 문아 들릴지어다(G. M. Martin)
후주2부 영원한 문아 들릴지어다(G. M. Martin)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33:14-16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9-13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 주셔서, 우리를 여러분에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누가복음서 21:25-36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1. 오늘은 대림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주일이자, 교회력에 따르면 한 해를 시작하는 주일이지요. 한 해의 마지막과 한 해의 시작, 바로 그 한 가운데 있는 날이 대림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1126)은 이른바 블랙 프라이데이였습니다. 11월의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미국에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쇼핑이 행해지는 날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녀나 손자들에게 줄 성탄절 선물도 이 때 구입하는데, 거대한 쇼핑 센터마다 이미 성탄절 장식으로 번쩍이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지요. 그래서 특히 어린이들에게 대림절은 기대와 설레임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서 저자는 놀랍고 충격적인 말씀, 두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와 은유로 대림절 첫번째 주일, 한 해의 시작을 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에 이어(21,20-24), 예수님은 우주적 파국과 세상의 파멸을 예언하시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21,25-26).

 

한 해의 시작이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날이 아니라, 해와 달이 멈추고(하박국 3,11), 어두어지며, 별들이 빛을 잃고(요엘서 3,15),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져서 가루가 되고, 하늘은 마치 두루마리처럼 말릴 것이며(이사야서 34,4), 땅이 진동하고 온 하늘이 흔들릴 것(요엘서 2,10)이라는 유대 묵시문학이 전망하는 우주의 파국과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것이지요.

 

개기일식과 월식, 유성을 보았거나, 천둥과 번개, 지진과 해일을 경험한 고대인들의 기억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우주의 변화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게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습니다. 생명은 모두 관계 속에 있고, 지구는 우주라는, 빛은 다크 에너지라는 거대한 어둠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코비드-19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우주와 지구,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의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때문이지요.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가르쳐주듯이,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이 나타나 종말론을 설파하고, 위기를 조장하면서 사익을 챙깁니다. 최근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시청률을 차지하고 있다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등장하는 신흥종교 새진리회의 수장이 지옥의 사자가 찾아오는 현상이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구도입니다. 두려움이 장사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주의 파국과 세상의 파멸 징조를 공포와 두려움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징조로 해석하십니다(21,28). 종말의 징조들은 세상을 포기하는 운명론이나, 패배주의, 도피주의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를 들게 한다는 것이지요(21,28). 세상 사람들은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지만(21,26),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히 일어나 머리를 들고 인자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난을 파멸의 징조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구원의 징조로 생각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듯이, 세상과 자연,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깨달으라는 말입니다(21,29-31).

 

재난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기쁨이고, 변화의 징조들이 누군가에게는 종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코비드-19’ 팬데믹과 기후위기가 누군가에는 종말에 대한 우울한 소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전환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주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21,33),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해야 한다’(21,34)고 권면합니다.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기 위해서는,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21,36).

 

재난과 재앙, 파국과 파멸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칩니다.’(21,35).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호의적인 심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닥칩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는 것 밖에 없습니다.

 

2. 그렇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약속은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실한 믿음 위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하신 복된 약속을 이루어 주셨다고 했고(33,14-16),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도록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한 것이지요(살전 3,9-13).

기도가 서 있어야 할 반석은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입니다.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천사는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1,37)고 말했고,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예수님에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며 놀라고 당황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10,27)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에는 믿음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나는 할 수 없다거나, ‘정말 이루어질까?’하는 의심과 회의가 기도하는 사람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미리 취하여 우리 자신의 의지를 방해합니다. 완전한 실망을 맛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의 반쪽만을 걸고, 건성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원, 의지와 기도에 응답하려고 하시는데, 기도하는 사람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흔들린다면,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 간청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과 의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이 있었고 솔직한 신뢰를 갖고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기도 중에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소원과 간구를 아뢰어야 합니다. 분열되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체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하나님께 바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아버지가 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 약속을 믿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잠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자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인간의 평생의 3분의 1이 자는 시간입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열린 눈과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둠의 현실을 인식하라는 뜻이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함께 중보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기도 중에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럴 때, 누군가 우리를 위해 함께 깨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마음과 몸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규정하기에, 기도하는 자세는 곧 기도의 마음과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고, 서로를 규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전해지고 있는 기도의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모세는 땅에 엎드려 기도했고’(16,4), ‘손을 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9,33). 다윗은 무릎을 꿇어앉아서’(대상 17,16) 기도했고, ‘지성소를 바라보며, 두 손을 치켜들고’(28,2) 기도했습니다. 아삽도 밤새도록 두 손 치켜들고 기도를 올렸고’(77,1-2), 솔로몬도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들어서 펴고 기도했다’(왕상 8,22)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 자세는 엎드려, 무릎을 꿇고, 혹은 서서, 두 손을 치켜들고 성전이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예수님도 유대전통을 유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고’(14,35), ‘무릎을 꿇고’(22,41), 때로는 서서’(11,25) 기도하셨고, 손을 얹어서 기도해주시기도 했습니다(19,13).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무릎을 꿇고’(9,40; 20,36; 21,5) 기도했고, 디모데에게도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권면한 것으로 보아(딤전 2,8),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3. 기도하는 자세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기도의 내용과 기도하는 상황에 따라 자세도 달라지겠지만, 결국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서서히 성장하면서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 안으로 성장해갑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18:1), 신앙은 기도를 강화하고, 기도는 신앙을 강화합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기도’(祈禱)빌 기빌 도’,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는 보일 ’()와 도끼 ’(), 두 단어가 결합되어 있는데, ‘보일 시제사’, ‘’() 등과 관련있는 부수글자로서 여기서는 제단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제단 앞에 두 손을 도끼날() 모양으로 모으고 소원을 빌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고, 는 기도하는 몸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글자인 빌 ’()는 제단 옆에 목숨 ’()가 놓여있는 형국이지요. 그렇다면 기도는 제단 위에 자기 목숨을 바치는 행위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는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자기 목숨을 제단에 바친다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이 단어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구체적이고 간절해야 하고, 가끔씩이 아니라 ’, 그리고, ‘깨어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시간 사이에살고 있는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과 시작 사이, 파멸과 창조 사이, 심판과 구원 사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 현실과 약속 사이의 긴장 속에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할 수 있고, 억압이나 실패 때문에 체념하여 방탕과 술취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여해 강원용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원히 사이-너머’(between and beyond)의 실존입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예배일 절기 설교제목 설교자
494 2025-06-08 성령강림주일 하나님 안에서 임영섭 목사
493 2025-06-01 부활절 일곱째 주일 하나님의 의 임영섭 목사
492 2025-05-25 부활절 여섯째 주일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임영섭 목사
491 2025-05-18 부활절 다섯째 주일 하나님의 집 임영섭 목사
490 2025-05-11 부활절 넷째 주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목자 임영섭 목사
489 2025-05-04 부활절 셋째 주일 한 아이와 하나님 나라 김진 목사
488 2025-04-27 부활절 둘째 주일 복음의 대가 임영섭 목사
487 2025-04-20 부활주일 문을 열고 벽을 허물고 임영섭 목사
486 2025-04-13 종려주일 장애를 가진 하나님 임영섭 목사
485 2025-04-06 사순절 다섯째 주일 이웃을 위한 향유 임영섭 목사
484 2025-03-30 사순절 넷째 주일 모두를 위한 하나님 나라 임영섭 목사
483 2025-03-23 사순절 셋째 주일 새 이스라엘의 사명 임영섭 목사
482 2025-03-16 사순절 둘째 주일 전력을 다한 달음질 임영섭 목사
481 2025-03-09 사순절 첫째 주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임영섭 목사
480 2025-03-02 주현절 여덟째 주일 산 아래로 내려가라 임영섭 목사
1 2 3 4 5 6 7 8 9 10 ... 33
전체 메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