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2018-11-09 10: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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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중심
성경구절 다니엘서 3:16-25, 6:19-28
설교자 박나혁목사
예배일 2016-12-28
예배 수요
오르간전주
찬양1부
지휘자 정록기
반주자 채문경
찬양2부
지휘자 김선아
반주자 신채우
후주1부
후주2부
성경본문 다니엘서 3:16-25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아뢰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17 불 속에 던져져도,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19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잔뜩 화가 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고 얼굴빛이 달라져, 화덕을 보통 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20 그리고 그의 군대에서 힘센 군인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하였다.
21 그러자 사람들은 그들을, 바지와 속옷 등 옷을 입고 관을 쓴 채로 묶어서, 불타는 화덕 속에 던졌다.
22 왕의 명령이 그만큼 급하였다. 화덕은 매우 뜨거웠으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들도 그 불꽃에 타서 죽었다.
2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은 묶인 채로, 맹렬히 타는 화덕 속으로 떨어졌다.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모사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화덕 불 속에 던진 사람은, 셋이 아니더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임금님."
25 왕이 말을 이었다. "보아라,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다.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에서 걷고 있고,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다!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다!"

다니엘서 6:19-28
19 이튿날 동이 틀 때에, 왕은 일어나는 길로 곧 사자 굴로 갔다.
20 그 굴 가까이에 이르러서, 왕은 슬픈 목소리로 외치며,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들으시오, 그대가 늘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사자들로부터 구해 주셨소?"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22 나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임금님, 나는 임금님께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23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리도록 명령하니, 사람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렸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아무런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
24 왕이 명령을 내려서, 다니엘을 헐뜯은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그 자식들과 아내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으니, 그들이 굴 밑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 부서뜨렸다.
25 그 때에 다리우스 왕은 전국에 사는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에게 조서를 내렸다."내 백성에게 평화가 넘치기를 바란다.
26 내가 다음과 같이 법령을 공포한다. 내 나라에서 나의 통치를 받는 모든 백성은 반드시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신다.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 무궁하다.
27 그는 구원하기도 하시고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과 땅에서 표적과 기적을 행하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하여 주셨다."
28 바로 이 사람 다니엘은 다리우스 왕이 다스리는 동안과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다스리는 동안 잘 살았다.
우리는 구약성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한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구속사로써의 이스라엘 역사에는 수많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왕국이 분열되기 이전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3명의 왕들이 있었지요.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초의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왕이 있었고, 이새의 막내 아들이자 메시야의 전형이 된 다윗왕이 있었습니다.

이 다윗왕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통하여 그의 혈통에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게 될 메시야의 도래라는 이상을 나타내 보이셨고, 성경의 곳곳에서 다윗과 메시야의 상호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언서에서는 다윗과 메시야의 일체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이후에는 지혜의 상징과도 같은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는 빛나는 업적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 있어서는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왕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을 시작으로 호세아까지 19명의 왕이 있었고, 남유다에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시드기야까지 20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이 왕들 중에서 선한 왕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 중에는 매우 극악한 왕과 그보다 조금 덜 악한 왕이 있었을 뿐, 선한 왕들이 아예 없었고, 남유다에는 20명의 왕들 중 겨우 8명만이 선한 왕으로 평가되어 있습니다(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물론, 이 선한 왕이라는 평가 기준은 “하나님이 보시기에”입니다. 이러한 선한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한 왕들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왕이 있으니 그는 바로 요시야입니다. 열왕기하 22장 2절을 보면 “요시야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어 주전 640년부터 609년까지 31년간을 통치하면서 신앙적으로 경건했던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왕의 전통을 이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는 재위 8년 되던 해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기를 원했으며, 재위 12년 되던 해에 우상을 파괴하고 가증한 이교적 예배를 금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위 18년 되던 해에는 성전을 수리, 복구하던 중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에 의해 발견된 율법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고 통곡하면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말씀과 비교할 때, 당시 유다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들의 타락상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요시야는 깨닫게 된 것이었지요. 이에 여선지자 훌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춘 요시야왕에게 예언된 재앙을 만나지 않고 평안히 조상들과 함께 잠들 것이 약속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됩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내용을 깨달은 후 정결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 율법 중심의 제2의 종교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제1의 종교개혁은 히스기야 때에 이루어졌었지요.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 그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좇게 하였고, 각종 산당과 우상들(바알, 아세라, 몰록, 드라빔등) 및 그와 관련된 부정한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불살랐으며, 신접한 자나 박수 등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 처형시켰습니다. 열왕기하 23장을 보면 이러한 개혁의 칼바람은 유다 지경을 넘어 당시 앗시리아 치하에 있던 북이스라엘 지경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결 작업을 진행한 뒤, 요시야는 유월절 절기를 성대하게 지킴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러한 요시야왕에 대한 성서의 평가는 극찬에 가깝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에 보면 요시야 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며 신앙과 믿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던 요시야 왕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 말씀인 다니엘서의 이야기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요시야왕의 굳건했던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써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요시야왕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렇고,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분명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바로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요구되어지게 됩니다.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왕은 단지 3개월 만에 이집트로 포로로 잡혀가고, 다니엘서 1장 1절에 나오는대로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 왕 3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왕족들과 귀족들을 잡아 가게 되는데, 이때 잡혀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즉, 이들이 잡혀간 때는 요시야왕 이후 대략적으로 3년 조금 넘는 기간이 지난 시기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시기가 매우 정확한 역사적 연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요시야왕의 시대에 태어났고, 자랐으며, 신앙적으로 매우 경건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1장 3절과 4절에 따르면 그들이 요시야왕 때의 유다왕족이거나 귀족의 자제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시야왕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 방법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으며, 그의 백성들도 요시야왕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이렇듯 요시야왕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의 신앙의 중심이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그들의 언어와 문학 교육을 철저하게 받게 됩니다. 그리고 3년간의 교육이 끝나고 난 후 환관장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교육받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가서 평가받게 했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매우 뛰어났으므로 최종적으로 왕을 모시는 일에 선택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벨론의 학문을 철저히 배우긴 했지만, 자신들의 신앙의 중심에서 결코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한 후에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비교하여 잘못된 것은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흔들림 없는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서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굳건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온갖 지혜와 꿈을 해몽하는 능력까지도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하는 사건을 계기로 다니엘은 바벨론 지역의 통치자들과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되어 굉장히 상향된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왕에게 요구하여 그의 세친구들은 바벨론 지방의 일을 맡아서 다스리게 되고, 자신은 왕의 궁전에 머물게 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다니엘의 세 친구의 이름입니다. 원래는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라는 이름이었지만, 바벨론에 붙잡혀왔을 때 환관장이 새로이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이들은 오늘 읽은 본문 말씀 3장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을 시기 질투한 자들에 의해서 말이지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으로 만든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끔찍한 처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어떠한 것일지라도 결코 그들의 신앙의 중심인 하나님을 멀리 떨어트려 놓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왕은 그들이 왕 앞에 붙들려 왔을 때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줍니다. 지금이라도 굴복하면 지난 일은 잊겠노라고, 하지만 굴복하지 않으면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어느 신이 너희를 구해 낼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합니다.

이에 오늘 읽은 본문 말씀 17절에 나오는 대로 “불 속에 던져져도,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말을 죽음의 위협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놀라운 능력을 믿는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위협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믿음의 중심이 바로 다음 18절에서 나옵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의 중심은 철저히 하나님이었고 결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들을 구해주셔야만 믿겠다는 조건부 믿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지 겸손히 따르겠다는 굳건한 믿음의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결단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잔뜩 화가 나서 화덕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였고, 그들을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22절 말씀에 보면 그 불타는 화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들을 붙들어 화덕으로 던지려던 집행인들도 그 불꽃에 타서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묶인 채로 맹렬히 타는 화덕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에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하시는지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화덕 불 속에 던져 넣은 사람은 세 사람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덕 속에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에서 걷고 있고,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다!”고 왕은 말을 하였습니다.

왕은 화덕으로 가까이 가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리로 나오너라!”라고 소리쳐 말을 합니다. 어느 신이 너희들을 구할 수 있겠느냐며 위협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불에 상하지 않은 멀쩡한 세사람을 확인한 왕은 그들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두고서 경솔히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이와 같이 자기를 믿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선포하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제 6장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본문 6장의 말씀은 3장의 말씀과 내용적으로 병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3장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시련이 있었듯이 6장에서는 다니엘에게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련의 모습과 극복 과정이 3장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그들을 질투하였던 이들에게 고발당하였듯이, 다니엘도 그의 능력과 성공을 시기 질투하였던 자들에 의하여 모함에 빠지게 됩니다. 세 친구의 이야기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때의 이야기이지만, 6장의 다니엘의 시련은 바벨론의 멸망 이후 메대 사람 다리우스왕이 다스릴 때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우스 치하에 있을 때에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상당히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그가 매우 우수하였기에 다리우스 왕은 그를 나라의 통치자로 임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정승들과 지방장관들은 다니엘의 흠을 잡아낼 궁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아무런 실책이나 허물이 없었기에 급기야 그가 믿는 신의 법을 문제 삼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총리들과 방백들은 왕에게 삼십일 동안 임금을 제외한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넣는 금령을 세우도록 요청을 합니다. 왕은 별다른 고민없이 금령의 문서에 도장을 찍게 되지요.

이 사실을 알고서도 다니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늘 하던데로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쳐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이유로 다리우스 왕에게 다니엘을 고발하게 됩니다. 14절에 보면 다리우스 왕은 이 고발을 듣고 몹시 괴로워하고,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썼으며, 해가 질 때까지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왕이 다니엘을 구원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고, 왕은 다니엘에게 “그대가 늘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구하여 주시기를 비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왕은 사자 굴 가까이 가서 다니엘을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들으시오. 그대가 늘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사자들로부터 구해 주셨소?”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사자들로부터 지켜주셨고,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다니엘을 모함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 모두를 사자 굴에 던져 넣어 처형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선포하게 됩니다. 다리우스 왕도 다니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리우스 왕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다니엘을 구원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3장에서 세친구들의 이야기와 6장에서 다니엘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시대적으로 3장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대였고, 6장은 메대의 다리우스왕의 시대였습니다. 두 시기 모두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왕의 절대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굴복하였던 시기입니다. 3장에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그러한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모함을 당하였고, 6장에서는 다니엘이 세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모함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양 쪽 모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정도의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모두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켰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일컬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들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다리우스 왕도 다니엘을 일컬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다니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도 메대에도 왕이 조서를 내려 온백성이 하나님을 공경할 것을 명령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온전히 드러나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속자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다니엘서 3장과 6장의 병행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성서 본문말씀이 전해주고자 하는 그 강조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닫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그 믿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거나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중심이 조건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에게 이러 이러하게 해주셔야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뜻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지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보다 더 큰 뜻이 성취된다면 순종하겠다는 그 믿음의 중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굳건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실제로 목숨을 내걸고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할 만한 극단적 상황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 시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흔들어 댑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그들과 같기를 요구합니다. 그들은 비록 그것이 불의한 방법일지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주저없이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뇌물과 청탁 등 온갖 비리와 부정 부패가 당연시 될 수 있고, 그러한 유혹이 끊임없이 신앙인들의 중심을 흔들어 댑니다.

기업체들은 어떠합니까? 정당한 생산과 판매의 방법이 아닌 온갖 부당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는 윗선에서 그러한 부정한 방법들을 강요하고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음을 느낄 때 마음에 갈등이 생기게 되지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신앙인들조차도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부정한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옳지 못한 일이라는 사실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굳건히 세워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커다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바,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신앙의 중심을 지키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그분만의 방법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믿음을 굳건히 세우고 지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6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중심을 잃은 혹은 중심이 없는 사람들의 최후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온갖 부정한 방법들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던 자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씁쓸해 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우리들도 또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나라가 이토록 어지럽혀지는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요? 아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믿음을 바로 세우고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 기준과 세상적 중심에 타협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의 흔들림 없는 신앙과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중심을 지켜나가야 하며,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어져갈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희들이 불의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정한 유혹에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옵시고, 하나님 당신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굳건히 믿음을 지켜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희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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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예배일 설교자 설교제목
564 성탄절 2016-12-28 박나혁목사 중심
563 대림절 넷째주일 2016-12-21 장효수목사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562 대림절 셋째주일 2016-12-14 안요한목사 그리스도인의 버킷리스트
561 대림절 둘째주일 2016-12-07 이현아준목 기다림
560 대림절 첫째주일 2016-11-30 박연길목사 포도원 일꾼들의 항변이 왜 잘못인가?
559 창조절 열둘째주일 2016-11-23 박선교목사 마른 뼈를 일으키는
558 창조절 열한째주일 2016-11-16 박나혁목사 무엇이 합당하냐
557 창조절 열째주일 2016-11-09 장효수목사 거룩한 산 제물
556 창조절 아홉째주일 2016-11-02 제프리 콴목사 당신의 삶에 새롭게하시는 생명의 영을 불어넣으라
555 창조절 여덟째주일 2016-10-26 윌리엄 슈바이커교수 잃어버린 자를 찾는 사람의 아들
554 창조절 일곱째주일 2016-10-19 김선구목사 하늘 본향 사모하는 사람
553 창조절 여섯째주일 2016-10-12 요하네스 타쉬너교수 자유케 하신 하나님, 오늘도?
552 창조절 다섯째주일 2016-10-05 이현아목사 새롭게 함으로
551 창조절 넷째주일 2016-09-28 조일구목사 하나님의 역사
550 창조절 셋째주일 2016-09-21 박연길목사 마지막 심판 비유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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